歌词
지하철이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손전화가
불규칙하게 울려댔다.
서로 바쁘다며 조별 과제 모임을
조금만 미루자는 내용이었다.
속이 시커먼 사람들이
문장 끝에 의무감으로
늘어놓는 키읔들이 잔망스러웠다.
다문 입술 틈으로 굳이 한숨이 나왔다.
데면데면한 인간 관계가,
어쩌면 내 대학생활의 전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런 상황이 익숙했다.
문득 서러워졌다.
이번 정류장은 고속터미널이라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고,
나도 그 틈에 섞여 지하철을 빠져나왔다.
그 순간 오늘의 외출이,
등교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다른 무엇을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벚꽃놀인 진해래요’라는
가사를 떠올리고
나는 무작정 창원행 버스에 올랐다.
진해에 도착하니
평일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벚꽃 구경을 하고 있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드러지게 핀 벚꽃 밑에서
다정한 미소를 나누고 있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혼자 싱글벙글
웃고 있는 한 남자도 보였다.
순간 눈이 마주쳤고,
그 남자가 나의 쪽으로
다가오는 동안 속으로
내가 아니길 간절히 외쳤다.
지금 이 평화를 모조리 깨뜨릴 것 같은,
그런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다가오지 말라고.
그럼에도 그 쪽도 혼자 오셨나봐요,
라는 싸구려 멘트를 듣고 말았다.
우리 운명 아닐까요,
라는 말까지 들은 후엔 아예 무시해버렸다.
운명이라는 것은,
내가 스스로 운명이라고 명명할 때
비로소 내 삶 안에서 의미를 갖게 된다.
모든 관계에서 서로의 온도를
느끼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지난 뒤 철저하게
주관적인 나의 판단과 선택만이,
이 관계가 내 삶 속에 운명으로
다가왔는지를 결정한다.
당신이 함부로 끼어들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관계를 지나치게 규정짓지 않고
당장의 감정에 솔직한 남자의
모습도 나쁘진 않았다.
데면데면하게 과제가 끝나면 번호를
지워버리는 사이보다는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조별과제의 책임감과 피로감에 비한다면
오히려 재미있을 수도 있다.
심지어 아직은 어색한 봄처럼
다가온 운명의 선택지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비 온 다음 날의 이 거리처럼,
올려다보던 모든 것들이 발 밑에서
젖어가는 감정을 느끼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될 것 같은 날이었다.
나는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없이
버스 정류장에 섰다.
이제 떠나는 내 옆에서
남자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미 많은 날을 함께하고
끝내 헤어지기로 한 사이처럼
어색하게 서있었다.
웃음이 날 것 같았지만 참았다.
오늘 밤, 진해에는 비소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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